‘의자 없는 하루’를 생각해 본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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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개인파산 “어떤 커피로 하시겠어요? 산미 있는 커피? 고소한 커피?”
“산미 있는 커피요. 감사합니다.”
“드시면서 화면에 보이는 큐알코드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접속해 주세요.”
공연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80조에 의거한 서비스직 근로자의 안전 관리 매뉴얼 만들기〉를 보러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커피 드실래요?” 이 커피 한 잔이 공연 표 값에 포함된 것인지, 혹은 배우와 관객 간에 오가는 선물인 것인지 궁금해하며 따뜻한 커피를 받아 든다. 나는 객석의 맨 왼쪽 끝 열, 앞에서 두 번째 줄 의자에 앉는다. 극장 안에는 카페 브금이 흘러나오고 있고 무대 한복판에 있는 테이블 위에는 커피 내리는 도구들이 놓여있다. 주위를 둘러보자, 자리에 앉은 관객들이 하나 둘 커피를 마시면서 오픈채팅방에 접속하는 모습이 보인다.
공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음료와 휴대폰은 자제해야 하는 극장의 기본적인 규칙이 깨지자, 이렇게 모여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 약간은 느슨해진 극장의 공기가 퍼져나간다. 이 다정한 극장은 분명 바깥 세계를 향해 반쯤 문을 열어두고 있다. 무대 위에서 바리스타 복장을 한 채로 커피를 내리고 있는 저 사람이 이 공연을 이끌어갈 사람일 것이다. 그의 앞 주머니에 삐죽 튀어나온 종이 뭉치가 눈에 띈다. 아마 대본일 것으로 추측했고, 예상대로 그는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그 종이 뭉치를 꺼내 들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누군가는 배우가 어떻게 대사를 외우지 않고 공연을 하냐고 의아함을 가질 수도 있겠다. 공연 소개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공연은 1인 다큐멘터리 퍼포먼스라고 소개되어 있다.
다큐멘터리 퍼포먼스, 혹은 다큐멘터리 연극은 실제 자료와 현실을 기반으로 동시대의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는 공연예술이다. 배우와 관객, 무대와 현실 사이의 경계에 대해 질문하고 그래서 배우가 자신의 이야기를 극 중 자신의 역할에 이입하는 방식이 자주 등장한다. 무대 바깥에서 살아온 배우 자신의 삶이 무대 안으로 끊김 없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류소연이라는 배우는 현실을 끌어온 무대 위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
공연에서 소개한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공연예술에 종사하는 배우일 뿐만 아니라, 카페에서 일하는 노동자이자, 30대 후반의 청년이며, 여성이자, 책방을 운영한 적 있고, 공연 이외에도 디자인 등 다양한 일을 하는 예술가이다.
이 공연에서 그는 바리스타 복장으로 커피를 내리며 카페에서 일하던 모습을 미처 다 지우지 않는다. 그리고 공연의 순서를 다 외우지 않은 채로 슬쩍슬쩍 대본을 보며 마치 연습이 다 끝나지 않은 배우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완전한 노동자도 완전한 예술가도 아닌 채로, 아니 불완전하기에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복합적인 모습 그대로 그가 말문을 연다.
노동자이자 예술가의 정체성으로 그가 ‘말’의 문을 연다.
제가 만든 커피 드실래요? 그리고 제가 만든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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