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헤매길 좋아하는 사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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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개인회생 거의 3년의 시간을 지나 마주 앉은 연임과의 대화는 당연히, 건강 이야기로 시작됐다. 유독 검던 우리의 머리칼이 절반은 하얘진 이슈, 여성호르몬 이슈, 연임의 몸에 기어이 나타난 유전성의 의료적 징후 이슈, 지난 한 해 나를 쥐고 흔든 각종 증상과 병원 순례 배틀… 나이는 그냥 지나가는 젊음을 아쉬워하는 척하며 먹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드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은 우리가 처음 만난 20년 전에는 꿈에도 몰랐다.
엄마 마주하기-“죽을 둥 살 둥 매달리게 되는 문제잖아”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였더라, 따져보니 나의 아빠가 갑작스럽게 암 투병을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병문안도 간병 교대도 할 수 없던 시기, 40년 넘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이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깝지 못했던 사람에게 마지막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당황하고 무력하고 혼란스러웠던 때, 연임에게 그 두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나의 아빠는 세상을 떠났고, 그 이듬해 연임의 아빠도 세상을 떠났다.
“아빤 학교에서 영어교사이자 상담교사였어. 시도 쓰고 먹그림도 그리고, 감수성이 풍부한 분이셨지. 덕분에 나도 어릴 때부터 전시나 공연, 영화관 같은 델 자주 갔지. 내 기억에 엄마는 아빠와의 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어린 나는 엄마 편이 되어주고 싶어서 아빠를 되게 미워하고 못되게 굴었어. 엄마는 무섭고 슬퍼보였고, 아빠는 나를 버리지 않을 거라 믿었거든. 시간이 흘러 아빠 돌아가신 후에 과거의 나를 돌이켜보면서 이런 내 모습을 알게 되었어. 죄책감과 원망하는 마음이 뒤엉켜 엄마와의 관계가 더욱 어려웠고 거리를 뒀어.
일 년 넘게 상담 받고 괴로워하다 알게 됐어. 엄마는 누군가의 정서나 감정을 받아주기 힘들었던 거야. 엄마도 당신의 감정을 읽어줬던 사람이 없었으니까. 어려운 환경에서 너무 힘든 일들을 혼자 경험해야 했으니까. 탱크처럼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방법밖에 몰랐어.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지. 험한 전쟁터에도, 사랑만 바라는 꽃밭 같은 딸이 손을 내밀어도, 상대가 얼마나 아플지 느끼지 못하고 탱크처럼 밀어붙였던 거야.
엄마와의 어려움이 나한텐 큰 공부가 됐어. 엄마와의 관계는 죽을 둥 살 둥 매달리게 되는 문제잖아. 나를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문제였지만, 그걸 들여다보고 해결하려다 보니까 (심리를 공부하고 상담하는) 나에겐 결국 큰 도움이 된 것 같아. 엄마의 하소연, 아빠의 하소연을 가운데에서 듣던 어린 시절의 경험도 경청의 조기교육이었던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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